조선왕릉 기초상식 알고가기
안녕하십니까! 재나무입니다. 제가 요새 찾아라!조선왕릉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열심히 포스팅하고 있죠? 하지만 제가 모든 글에 하나하나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ㅠㅠ 그게 이 글의 탄생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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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재나무입니다! 지난 글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강원도 영월을 다녀왔습니다.
새벽 5시에 출발해서 2시간 30분 걸렸습니다. 그래서 5일장 갔는데 너무 일찍 가서 허탕치고 오고....
자세한 내용은 '전국 여행기' 카테고리에 곧 올라온 '영월 글'을 참고해 주십쇼!
어쨌든, 우리는 장릉을 탐사하러 갔기 때문에, 장릉을 하나하나 다 뜯어볼 겁니다.
먼저, 가격부터 알아봐야겠죠?
성인요금은 2천원이고, 65세 이상은 어떻게든 자신이 65세 이상이라고 밝힐 수 있다면 무료입니다.
참고로 제가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가, 매표소에 가격이 안써있어서 잘 모릅니다;;
그럼 각설하고, 이제 왕릉을 찾아가보겠습니다.

입구부터 불안합니다.
처음으로 능이 등산을 시키는 것 같군요. 일단 올라가 봅시다.

기대는 안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 끝이 안보입니다. 이게 등산을 하는 건지 왕릉을 찾으러 가는건지...

경사도 상당히 가파릅니다. 끝이 진짜 안보이네요.

드! 디! 어! 다 왔습니다. 거의 6분은 등산(?)한 것 같네요.
정자각이 저- 아래에 희미하게 보이네요. 더 가까이 가봅시다.

언덕에서부터 상당히 아래에 있습니다? 이러면 (정자각에서) 절을 했을 때 안보이겠는데요?
제가 절할게 아니니까 상관없으니 능을 가까이서 봅시다.

다른 능과 다르게 장릉은 바로 앞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제 생각으론 보통 정자각 있는 곳에서까지만 볼 수 있지만
장릉은 정자각 근처에서 보이지 않아서 바로 앞에서도 볼 수 있게 한 듯합니다.
그럼 장릉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장릉의 유래
조선왕조 제 6대 임금 단종의 능이다.
세조 2년인 1456년 6월 집현전 학사 성삼문, 박팽년 등이 상왕복위사건으로 참형을 당했으며
다음 해 6월 21일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광해군과 같은 군입니다)으로 바뀌었고
그 다음날 영월 청령포(조만간 올릴 예정)로 유배되었으며 2개월동안 살다가 홍수로 인해 관풍현으로 옮겨졌다.
세조 3년인 1457년 금성대군의 단종복위 계책이 발각되자 단종은 폐서인(벼슬이 없어지고 일반 백성이 됨)이 되고
그해 10월 24일 돌아가셨는데(참고로 위키백과, 여러 사이트에선 11월 4일로 표기하고 있음) 그때가 17세였다.
단종의 유해가 동강에 흘렀는데 엄흥도가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며 수습하여 이곳에 몰래 묻었다.
중종 11년인 1516년에 단종릉을 찾으라고 왕명이 있었고, 25년 뒤에 찾아서......
살려주세요... 이게 뭐라는지 1도 모르겠는데요...
한자 잘하시는 분들 댓글로 적어주세요...

이 글을 쓰신 분은 한자를 되게 잘하시는 분인 것 같네요.
우리 사회 모두가 저분처럼 한자를 잘했으면 좋으련만....
저 글을 보니 생각나는 글이 있네요.
유홍준 청장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1 124~125p에 나오는 수덕사 안내표지판에 관한 내용입니다.
" 이런 수덕사 대웅전을 두고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에서 안내표지판이라고 세워둔 그 글귀를 읽어보면 세상에 이처럼 망측스러운 글이 없다.
'국보 제 49호 (...) 맞배지붕에 주심포형식을 한 이 건물은 주두 밑에 헛첨차를 두고 주두와 소로는 굽받침이 있으며, 첨차 끝은 쇠서형으로...(중략)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 말인즉슨 다 옳고 중요한 얘기다. 그러나 그것은 전문가들끼리 따지고 분석할 때 필요한 말이지 우리같은 일반관객에게는 단 한마디의 도움도 되는 구절이 없다."
좀 많이 인용했습니다만 많은 이해 바랍니다. 제 생각을 표현하기에 이 구절이 딱인 듯 해서 말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능을 보고 절대로 장릉을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없죠. 그래서, 정자각을 보러 가볼겁니다. 따라오시죠!

빠바밤빰빠밤~ 정자각이 왔습니다! 여느 정자각과 다를 게 없는 아주 고풍스럽고 멋진 정자각입니다.
그럼 내부도 살펴볼까요?

여기는 다른 정자각과 다르게 내부에 볼 게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천장을 보게 된다....
여기는 문종 능 정자각에 비하면 천장이 상당이 보기 좋습니다~!

단순한 게 최고라고... 역시 저모양보단 훨!씬! 낫네요.
그럼 정자각 설명을 들어볼까요?(불안불안)

기대를 한 제가 잘못인 것 같네요. 에휴. 답사기에 나왔던 안내표지판보다 더 심하네...
(여담으로 답사기에 나왔던 수덕사 안내표지판을 제가 수덕사 갔을 때 봤는데 확실히 바꿨습니다. 그 사람들도 답사기를 읽은 걸까요? 하하)
제가 대신 설명하자면 '숙종 25년인 1699년에 건립해서 제사지낼 때 제물을 바치는 곳이고,
건물의 모양이 丁<<이 모양이랑 닮았다 해서 정자각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아니 이렇게 쉽게 설명하면 될 것을.....(말잇못)
아! 지금 갤러리 찾아보니 장릉의 유래가 저 훈민정음해례본 말고 제대로 된 게 있었네요! 함께 보시죠!

음...... 잠시만요.
장릉의 유래
장릉은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의 능이다.
단종의 이름은 홍위이며 문종의 아들로 세종 23년 7월 23일에 탄생하였다.
세종 30년에 왕세손, 그리고 1450년 7월 20일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그후 부왕인 문종이 재위 2년만에 승하하자 그 뒤를 이어 12세의 어린 나이로1452년 5월 18일, 경복궁에서 즉위하였다.
단종 원년인 1453년 숙부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켜 국권을 장악하고 단종을 위협하자 단종 3년에 상왕으로 물러났다. 세조 2년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자 그 사건에 연루되었다 하여 노산구로 강봉된 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1457년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 유가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에 세조는 1457년 10월 24일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니 17세의 어린 나이로 승하하였다.
이때, 영월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동을지산인 이곳에 몰래 매장 하였다.
그 후 숙종 6년에 대군으로 추봉되고, 숙종 24년에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으로, 능을 장릉이라 하였다.
장릉은 간소한 후능석물 양식이며 다른 왕릉과는 달리 단종대왕에게 충절을 바친 신하들의 위판을 배향한 배식단사와 충신단, 정려각이 있다.
이렇게 쓰여 있네요. 확실히 읽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점이 몇 가지 보이는데...
하나는 제목이랑 글이랑 뜻하는 것이 다름이고,
둘째는 단종을 대왕이라 표기한 것입니다.
단종이 대왕이 될 자격이 못되었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닙니다만
모든 왕에 대왕이라고 붙여버리면.... 그건 조금~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 개인적인 기준으로 대왕이 될 만한 조선의 왕은
세종과 정조 정도라고 생각이 드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그 외에 대왕으로 불리는 게 광개토대왕이 있겠네요.
어느 라디오 방송에 나온 적이 있지만 광개토대왕 대신 광개토태왕(太王)이 옳은 표현이라고 합니다.
태는 대보다 쉽게 말하면 한 단계 더 높은 것이라 볼 수 있죠.
왜 자꾸 딴소리할까요. 우리는 아직 갈길이 멀은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사육신들, 즉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의 기념건축물?을 보러 가봅시다.
제단이랍니다. 제가봤을 땐 그냥 의자나(?) 올림픽 수상할 때 있는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자리 같습니다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번에는 우물을 보러 갑시다.

저는 왜 우물보다 제 그림자가 먼저 보일까요?
그림자로 보니 살아있는 저승사자 같다고 해야 하나?ㅋㅋㅋ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
이 우물은 보시다시피 아직도 물이 많습니다! 제사 때 사용한다고 하네요.
이 우물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표지판을 참고 바랍니다.

이친구는 그나마 봐줄만 하죠?ㅋㅋ
대충 이런 우물이랍니다.
이제 다 끝난 듯했는데, 여기에 뭔가 이상한 게 있습니다? 한번 보시죠.



이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멋있는 기와집 안에 이상한 게 있습니다.
안내판도 없어서 뭔지 알수가 없네요.. 아시는 분들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2023년 7월 3일 부분수정
저게 뭔지 알아왔습니다.
유홍준 박사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8 - 남한강편'에서 알아왔는데요,
저 나무같이 있는게 '장판옥'이라고 합니다.
저게 뭐냐면 '정조가 단종에게 의를 지킨 충신을 비롯해 억울하게 죽은 여인과 노비에 이르기까지 268명의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고 '긴 널빤지에 이름을 새겨 모시고 있다고 하여 장판옥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역시 조선의 참된 왕 중 한명인 정조대왕이십니다.
근데 노비가 이름이 있었나요? 어떻게 알아서 적은걸까요.
그리고 그때는 세조때고, 장판옥에 적은건 정조때여서 몇백년의 세월이 흘렀을텐데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진짜 존경합니다.
이제 사실은 장릉 다 봤습니다. 제가봤을땐 이번 글이 찾아라!조선왕릉 중 가장 긴 글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근데 이렇게 끝내면 섭섭하죠!
여러 여행자들 사이에서 장릉이 산책코스로 꽤나 유명합니다! 그래서! 한번 구경 잠시 해 봅시다.




아주 산책길이 죽여주죠?ㅋㅋ
(인스타는 안하지만)셀카 찍고 인스타에
#강원도 영월 #겁나춥다 #사진맛집 #무덤샷 죽이고요
라고 올리면 싫어요 하나가 생길겁니다. 인스타엔 싫어요 없나? (나에겐 오직 블로그뿐)
자, 여러분. 슬픈 소식이 하나 왔습니다. 장릉이 아직 끝난 게 아니랍니다ㅠㅠ
지금이 몇시냐.. 새벽 2시.... 12시부터 졸려 죽겠는데 이난리나 치고 있으니... (하품)
그래도, 뭐.. 중요한 거니 봐야죠....
.

홍살문을 놓쳐버렸네요. 그래도 뭐... 건원릉 글부터 쭉 보신 분이라면 아실 거라고 생각해서 넘어가겠습니다.

단종비석도 있다네요.

깔끔하게 잘 만든 듯 한데, 왜 글씨가 빨간색일까요? 무섭게ㄷㄷ

진짜 마지막으로 재실입니다.
재실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자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단종박물관이 또 있긴 하지만 딱히 볼 게 없어서 생략했습니다.
지금까지 장릉 방문기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남양주로 떠날 계획입니다. 그럼, 즐거운 설날 보내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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